영빈 강씨는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의 후궁으로, 아들 화의군 이영을 낳았습니다. 그녀의 본관은 진주이며, 1425년(세종 7년) 왕자를 출산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영빈 강씨의 출신 가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부족하지만, 일부에서는 세종대의 문신 강석덕의 딸이라는 설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는 공식 기록으로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영빈 강씨의 삶은 아들 화의군의 비극적인 운명과 깊이 연결됩니다. 화의군은 단종 즉위 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유배되었고, 결국 1460년 사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영빈 강씨 역시 오랫동안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으며, 아들과 함께 작호가 삭제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후손들은 영빈 강씨의 묘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1994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편에 묘역을 조성하고 2008년 사당과 재실을 건립하여 그녀의 절의를 기리고 있습니다.
매년 음력 3월 3일, 익산 금마면에 위치한 영빈 강씨의 사당 숭의사에서는 화의군파종회 주관으로 제향이 봉행됩니다. 이 제향은 세종대왕의 후궁이자 화의군의 어머니인 영빈 강씨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이 모여 선조의 뜻을 되새기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익산 금마면의 영빈 진주 강씨 사당은 조선 왕실의 역사와 지역의 문화유산이 결합된 의미 있는 장소로, 방문객들에게 역사적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