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2세는 잉글랜드의 왕이자 프랑스 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조입니다. 그는 어머니 마틸다와 아버지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의 혈통을 통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과 노르망디, 앙주에 대한 권리를 동시에 확보하였습니다. 특히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의 결혼으로 프랑스 남서부의 광대한 아키텐 공국을 획득하며 프랑스 국왕보다 더 넓은 프랑스 영토를 통치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헨리 2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군사적 팽창뿐만 아니라 행정과 사법 체계의 재정비에 있었습니다. 그는 왕실 법원을 강화하고 순회 재판 제도를 체계화하며 배심 제도의 기초를 마련하여 관습법 발전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또한 왕실 재정과 통화 제도를 재정비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강화하는 등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헨리 2세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과의 교회 재판권 통제 문제로 갈등을 겪었으며, 이 갈등은 베켓의 살해로 이어져 유럽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통치는 앙주 제국의 구축과 국가 체질의 재설계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교회와의 충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동시에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