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 시도는 당시 정치 지형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민주당의 위기 속에서 정몽준 후보가 급부상하며 유력 주자로 떠올랐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단일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의 여론조사 경선 방안을 수용하며 최종 대선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단일화 이후에도 정몽준 후보는 총리 등 주요 인사권 50%를 요구하는 등 추가 조건을 제시했으나, 노무현 후보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의 지지 철회 선언은 노무현 후보에게 오히려 동정 여론을 형성하며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의 결집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와 맞물려 노무현 후보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단일화 과정은 국민경선제 도입, 온라인 정치 참여 확대, 지역주의 완화 가능성 등 새로운 정치 문화를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분열과 열린우리당 창당, 노무현 탄핵 사태 등 후폭풍 또한 적지 않았으며, 정몽준 후보는 '배신자' 이미지로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와 그 결과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