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1989년 만 17세의 나이로 록 밴드 시나위에 베이시스트로 합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북공업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신대철의 눈에 띄어 시나위 4집 앨범 《Set My Fire》에 참여했으며, 이 앨범 활동 이후 시나위가 해체되자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여 데뷔했습니다. 그는 시나위 활동을 통해 밴드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았고, 이는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최근 김종서와 고(故) 신해철의 7년간 이어진 불화가 서태지의 중재로 해소될 뻔했던 일화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종서는 시나위 출신 보컬리스트로, 신해철은 밴드 넥스트의 리더이자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뮤지션으로 활동했습니다. 두 사람의 오랜 갈등은 서태지가 직접 나서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으나, 약속 당일 신해철이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만남은 불발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세 사람 모두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더욱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서태지는 시나위 활동을 통해 록 음악의 기본기를 다졌으며,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여 힙합과 댄스 음악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히트를 넘어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며 X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3집의 '교실 이데아'와 같은 곡들은 당시 교육 현실을 직격하며 대중가요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했습니다. 이처럼 서태지는 시나위 시절부터 이어진 음악적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